분홍은 빨간색과 흰색을 혼합한 색이다. 빨강보다 명도가 높지만 채도는 낮은 컬러인 분홍은 피어나는 꽃과 해가 저물어갈 즈음의 하늘, 귀여운 아기의 두 뺨에서 볼 수 있으며, 사물과 공간에 은은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주고자 할 때 주로 사용한다. 다른 컬러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은 편이지만, 분홍색의 상징성과 사회적인 의미, 암시는 짧은 시간 동안 다채로운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분홍은 여느 컬러 못지않을 만큼 확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분홍 색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으며, 색깔로서 분홍(Pink)이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때문에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분홍을 칭하는 단어는 비슷한 색조를 띠는 '로즈 rose', '장미꽃'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핑크 컬러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은 프랑스의 여후작 Pompadour 부인의 공이 크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루이 15세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 소재였다. 사교계에서는 그의 미모와 지성, 교양을 칭찬했고, 사람들은 그가 입는 옷과 헤어 스타일을 따라 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유독 좋아했던 분홍은 rose, 또는 rose Pompadour라고도 불리며 의류, 회화, 도자기 분야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핑크색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드레스 등의 여성복, 전화기, 차량이나 여자아이들의 장난감 등이다. 그러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핑크는 오히려 남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1918년 발간된 영국의 여성지 British Ladies' Home Journal에서는 "분홍은 인물을 더욱 분명하고 강해 보이게 하는 색으로, 남자아이들에게 더욱 잘 어울린다"고 평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발간된 아동 패션 잡지 Earnshaw's Infants' Department에서도 "사회 통념상 분홍은 남자아이들에게, 파랑은 여자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컬러다"라고 평한 바 있다.



분홍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중반을 거쳐 여러 광고업자들의 판매전략에 의해 뒤바뀌었다. 여성을 위한 제품을 파는 기업에서는 핑크를 여성적인 컬러로 설정했고, 이들의 상술에 영향을 받은 대중들은, 특히 남성 소비자들은 핑크색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광고업자들은 색으로 성별을 구분한다는 이 설정에 신선함을 느꼈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간다는 사실에 더욱 공격적으로 성별에 따른 색깔의 이미지를 강조해 나갔다. 지금은 색을 바라보는 시선과 성 역할, 기호에 대한 편견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분홍색은 여전히 여성들의 의류, 제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여느 색과 마찬가지로, 분홍색이 인간의 심리와 뇌에 미치는 영향은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워싱턴 Tacoma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던 Alexander Schauss는 밝은 색조의 분홍색이 폭력성을 누그러뜨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해준다는 가설을 세워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분홍색에 노출된 피실험자가 다른 색에 노출된 피실험자에 비해 더 낮은 근력 수치를 보인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미국의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의 폭력성을 억제하기 위해 감옥의 벽을 핑크색으로 칠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분홍색과 인간의 혈압, 혹은 근력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핑크색의 감옥 벽은 점차 사라져갔다.



한편, 영국의 Newcastle upon Tyne 대학교의 연구자들은 2007년,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시작했다. 그들이 설정한 가설은 '남성이 파랑을, 여성이 분홍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된 기호'라는 것이었다. 연구진을 이끈 Anya Hurlbert는 "채집활동을 하며 잘 익은 과일을 찾아야 했던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잘 익은 과일의 색, 분홍을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연구들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학계 대부분은 '남성의 파랑을, 여성이 분홍을 선호하는 현상에는 유전적 요인보다 문화적 요인이 더욱 관계가 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날 핑크 컬러의 역삼각형은 동성애를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되는데, 그 기원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수감된 성 소수자들에게 분홍색 역삼각형 표시를 채웠다. 분홍색 역삼각형의 표식을 달고 있던 많은 동성애 수용자들은 성적으로 학대당하거나 강제 노역을 해야했고, 심지어는 조직적으로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전후로도 핑크색은 여성, 혹은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컬러로 쓰이며 서구권 남성들을 중심으로 핑크는 '남자답지 않은' 색이라고 인식되어갔다. 그러나 현대의 동성애자들은 그들 자신과 핑크를 향한 편견 어린 시선에 맞서기로 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면서 뿌리 깊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맞서기 위해 분홍의 역삼각형을 당당히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편견에 맞서는 당당한 컬러.
핑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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